Page 6 - 밝게 열린 아이들 세상 46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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6 옛 추억이 있는 세상 옛 추억이 있는 세상 7
무 가지치기를 해서 작아진 것인지 그 어릴 적에 보았던 해주시고 지지해주셔서 내 꿈을 이룰 수 있었고, 또 언제
은행나무가 주는 큰 나무가 아니었다. 가을이 되면 길가의 가로수 은행나 든지 할 수 있는 직업이 생긴 것에 너무 감사하다.
원에서 자랄 때는 몰랐던 것을, 이렇게 아내로, 엄마로 살
무를 볼 때마다 그리움처럼 계명원의 향수가 떠오른다.
그리움 따듯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 걸 보면 소소한 행복이 많 다보니 계명원 선생님들이 얼마나 힘드셨을까하는 철듦
이 마음을 아리게 하는 것 같다. 그 때는 100명 가까이 살
았던 것 같다.
면서 아옹다옹 사느라 선생님들의 노고를 몰랐고 늘 불
故 양계석 원장님과 임순례 사모님도 생각나고 성장하여 평도 많고 감사도 몰랐다. 그런데 내 아이 하나, 둘 키우
유0순(1998년 보호종료)
퇴원 할 때까지 함께 하셨던 양성수원장님, 조월현 원장 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사춘기를 지나는 많은 아이들이
님도 너무 그립고 보고 싶다. 나는 인천에서 자라다 강화 얼마나 힘들게 하였는지... 순한 것 같던 나도 늘 툴툴거
로 이전 할 때 같이 오게 되었는데 초창기에는 매일 선생 리고 괜스레 어긋난 행동도 하며 마음 아프게 하였는데...
내 어릴 적 부모님은 잦은 다툼이 있으셨다. 언니와 나 며 꿈을 키워 갔다. 님들이 차량으로 등교시켜 주셨는데, 아이들은 많고 선 어떻게 그 많은 식구들을 챙기며 큰살림을 해 내셨을까
는 그렇게 다툼이 있을 때마다 자리를 피해 마음 졸이며 입학할 당시 빠른 생일이라 7살에 학교에 다니는데 나 생님은 적어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다.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더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든다.
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렸다. 그러던 어느 날, 엄마는 가 는 키가 작아 가방도 참 크게 느껴지고 창영 초등학교 가 고3이 되면서 진로를 결정할 때 간호사가 되고 싶어 하 결혼해서도 언니와 나는 가까이 살며 어릴 적 얘기를 자
출을 하셨고 돌아오지 않으셨다. 아빠는 일을 하러 가시 는 길이 너무 멀고 지루하였다. 하지만 같이 어울려 등 는 저의 간절함을 알고 간호학원에 다니도록 해주셔서 주 한다. 언니와 내가 이렇게 예쁜 가정을 이루어 살도록
면 늦게야 귀가하시고 우리를 돌보기에 벅차, 저희 자매 교하는 골목길은 왜 그렇게 볼거리도 많고 호기심 가는 학교수업 이후 학원에서 돌아오는 늦은 밤길을 선생님 늘 지지해주신 원장님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.
를 보육원에 의뢰 하셨다. 것도 많던지, 친구들이랑 언니들과 오래 걸려서 갔던 기 들이 차량으로 귀가하도록 도와 주셨다. 미안하고 감사 언제나 건강하셔서 내년 노란 은행나무 잎이 떨어지는
나는 1984년, 6살 즈음, 언니와 함께 계명원으로 입소 억이 난다. 하면서도 너무 당연하게 받았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가을 무렵에 꼭 찾아뵙겠습니다.
하게 되었는데, 처음에는 큰 언니들과 오빠들이 너무 낯 죄송한 마음 가득이다. 그렇게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 마음은 항상 그곳에 있습니다. 계명원 가족 사랑합니다!
설고 긴장감이 계속되어 어려웠으나,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에서 돌아오면 여자반 숙소 옆에 있는 은행나무 아 득하여 개인병원에 취업할 수 있어 자립하면서 당당함
적응되어 웃음이 많아지면서 더불어 계명원 생활이 즐 래 옹기종기 모여 놀았다. 고무줄놀이와 도둑잡기 놀이 이 있었다.
거워졌다. 언니들과도 친해지고 친구, 동생들과도 친해 도 하며 신나게 놀았다. 가을이면 노란 은행나무 잎이 흐 먼저 자립한 언니가 제게 큰 의지가 되고 같이 살면서 아
지면서 나를 예뻐 해주고 사랑해주시는 선생님들의 손 드러지게 피어 그 주변이 다 노랗게 물들을 때면 우리는 옹다옹 다툼도 했지만 큰 힘이 되었다. 언니도 직장인으
길과 눈길이 좋았다. 공부도 곧 잘해서 칭찬 들으며 자 은행나무 잎을 뿌리며 놀기에 바빴는데 오빠들은 청소 로 안정적으로 잘 살고 저 또한 잘 살 수 있었던 모든 것
랐다. 하기 싫다며 미리 나뭇가지를 흔들어 떨어뜨리곤 하였 에 감사하다.
지금은 원장님이신 조월현 엄마는, 늘 제게 얼굴도 뽀얗 다. 그 엄청난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강화로 이전 할 때 병원에서 일하는 즐거움이 너무 컸고 남편을 만나 결혼
고 예쁘다며 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사가 되면 너무 잘 같이 옮겨와 강화 계명원의 입구에 심겨진 것이 신기하 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도 간호조무사로 병원에서
할 거라고 간호사 공부를 권유하셨다. 그 후로 언젠가부 기만 하였다. 그때는 그 나무가 그렇게 커 보였는데, 찾 일하는 것이 꿈만 같았다. 일하면서 느낀 것은 어릴 적 꿈
터 누가 장래희망을 물으면 언제든지 간호사라고 말하 아가서 보니 내가 큰 것인지 은행나무가 이사 오면서 너 을 심어주신 원장님이 너무 감사하였다. 공부하라고, 너
는 잘 할 거라고, 또 잘 어울릴 거라고... 늘 칭찬으로 격려